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로이센-프랑스 전쟁 (문단 편집) === 스페인 왕위 문제 === 전쟁의 계기는 [[스페인]]에서 시작되었다. 스페인은 [[1700년]] [[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]] 이후 [[보르본 왕조]]가 왕위를 차지한 이래 전통적으로 프랑스와 친선을 유지했던 나라였다. [[1868년]] [[스페인 국왕|스페인 여왕]] [[이사벨 2세]]가 혁명으로 쫓겨나면서 왕위가 비자 스페인은 유럽의 왕가들을 탐색하다가 [[빌헬름 1세]]의 친척인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가문[* 프로이센 왕실 [[호엔촐레른 가문]]의 슈바벤계 방계이다.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가문은 [[가톨릭]]이고, 프로이센 왕가는 [[개신교]]였다.]의 '레오폴트 왕자'[* [[루마니아 왕국]]의 국왕 [[페르디난드 1세]]의 아버지.]에게 왕위를 제의한다. 이에 비스마르크는 "그거 괜찮네"라는 반응을 보였고 레오폴트 왕자는 처음에 제안을 받아들였다. 하지만 정작 호엔촐레른 가문의 수장 [[빌헬름 1세]]가 반대했다. 국제적으로 어그로를 너무 끌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전형적인 [[왕권신수설|왕권신수론]]자로서, 신의 은총으로 내려진 왕권을 폭도들이 무엄하게 갖다 바친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기 때문이었다.[* 빌헬름 1세는 [[1848년 혁명]] 때도 형인 [[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]][* 자식이 없어서 동생이 왕위 계승자였다.]와 달리 왕태제로서 강경진압을 내세워 혁명세력에 쫓겨서 잠시 [[망명]]했고, 프로이센-오스트리아 전쟁때 동맹국이 된 통일 [[이탈리아 왕국]]도 폭도들이 혁명으로 만든 나라라며 부정적이었다. 그래서 당시 비스마르크가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는다는 소리에 경악했지만 결국엔 비스마르크 뜻대로 관철시켰다.] 여기에 프랑스의 압력까지 가해지면서 당사자인 '레오폴트 왕자'가 왕위를 사양하였다. 사실 스페인은 혁명 후 내전에 빠진 상태였으므로 기반도 없는 외국 출신 왕이 가서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도 모르는 판이었다. 게다가 자식들은 후사가 없는 동생 루마니아 왕의 자리를 물려받기로 약속되어 있어서 아쉬울 게 없었다. 결국 스페인은 [[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]]의 차남 [[아마데오 1세]]를 모셨다가 도착하기도 전에 총리가 암살당하고 [[카를리스타]]들이 격렬히 반발하는 바람에 불안정한 스페인 정국에 질려버린 아메데로 1세는 왕위를 내놓고 [[토리노]]로 돌아가 버렸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